[두번째 4,300km] D+010, 기억의 왜곡 –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 기억의 왜곡 –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날씨 맑음

 

D+010 San Jacinto Summit to Snow Canyon RD faucet (33.6 km / Total 300.4 km / 07:40 ~ 18:10 / +369 m / -2,568 m / Total + 9,265 m / – 9,783 m / @ 527 m)

 

“참 신기해. 이 길에 대한 기억이 뚜렷한데 저 산에 대한 기억은 없어.”

나는 ‘산 하신토’ 산을 뒤로 내려오며 하늘이에게 말했다.

“진짜? 이 길에 대한 기억은 뭔데?”

하늘이는 신기하단 듯이 물었다.

“이 구간이 정말 힘들었던 구간이야. 물도 없도 엄청 더웠던 것으로 기억해. 그때는 지금처럼 정보도 없고 익숙치 않아서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내려갔던 기억이 나.”

“눈 앞에 보이는 이 거대한 산은 기억이 안나?”

“어. 진짜 아예 기억에 없어. 땅만 보고 걸어 갔었나봐. 내 발 밑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한데 위로의 기억은 나지 않아.”

 

pct

 

정말 신기했다. 오늘 걸은 구간은 오랫동안 내 뇌리속에 박혀 있던 곳 이었다. 3년전 걸었던 PCT 에서 엄청난 갈증으로 고생했던 적이 두번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구간 이었다. 30km 넘게 물을 못 만나고 2,000m 이상의 사막산을 땡볕에 계속해서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분명 ‘산 하신토’ 산이 계속해서 웅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 산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이번에 오르고 나서 내려오다 보니 이 구간이 이렇게 멋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참 신기했다. 분명 그때도 내 눈에 이 산과 멋진 풍경이 보였을 텐데 내 머리속은 발 아래만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너무 힘들어서 하늘 위를 볼 겨를이 없었거나 오로지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하여 발 아래로만 기억하는 것 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름 익숙해 졌다고 하지만 역시 오늘도 이 구간은 우리에게 힘들었다. 계속 계속 같은 곳을 돌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표 지점은 발 아래 보이는데 거대한 산을 빙빙 돌아가며 내려간다. 그렇게 30km 를 넘게 걸어 2,500m 산을 내려 와서야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물을 만나게 되었다. 물에 도착하니 많은 하이커들이 이미 도착하여 쉬고 있었다. 다음 물 까지는 거리가 꽤 되어 다들 여기서 캠핑을 하는 듯 했다. 우리도 캠핑을 하기로 하고 적당한 사이트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게다가 바람도 세게 불어 잘못하면 텐트가 날아갈 것 같았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한켠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마무리 했다. 다행이 무릎이 견뎌주고 있다. 빅베어에 도착하면 제로데이를 갖고 푹 쉬어야 할 것 같다.

 

water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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